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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뉴스

주민보다 남북관계 우선?..'위험한 터널공사' 눈감은 정부
박정열과장|2021-08-09 조회수|501

익산~평양 연계노선 구간으로 남북 경제교류협력 등에 필수적인 도로다", "철회 시 고속도로 단절 등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예상된다"

최근 전문가들이 붕괴 등 안전사고 위험성을 경고한 검토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된 광명~서울 고속도로 '온수터널' 구간 공사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공식 입장이다. 사고 위험성을 감내해도 공사를 강행한다는 의도가 읽힌다.

광명~서울 고속도로는 수원~광명(27.4km) 서울~문산(35.2km) 고속도로를 잇는 20.2km 구간으로 2018년 2월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재임 시절 실시계획이 승인됐다. 일단 문산까지 완공한 뒤 향후 남북관계 흐름에 따라 평양까지 도로를 잇겠다는 게 현 정부의 구상이다.
 
 
2003년부터 표류한 광명~서울고속도로…우회로인 항동지구 선택한 이유
 
 
이 도로는 2003년 최초 제안됐지만 노선을 지나는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로 사업 계획이 여러번 바뀌었다. 사업 시행자인 코오롱글로벌(서서울고속도로)은 처음엔 최단 거리 공사를 위해 양천구를 지나는 노선을 제안했으나 주민 반발로 무산됐고, 이후 2007년 구로 천왕지구를 대안 노선으로 검토했지만 입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시행사가 이후 선택한 대안 노선은 구로 항동지구다. 원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었는데 2010년 주택공급을 위한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된 이후 개발이 가능해졌다. 당시 이 지역엔 건물과 기반시설이 거의 없고, 주민도 적었다. 당초 계획보다 노선이 길어진 '우회로'여서 사업비 부담이 늘어났지만 이미 7년을 날린 시행사로선 착공이 시급한 까닭에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도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고속도로 주변 환경오염을 우려한 광명시와 부천시는 지하화를 요구했고, 종착지인 서울 강서구는 기존 도로 정체를 완화하는 대안을 촉구했다. 이런 요구는 대부분 수용돼 2018년 확정된 실시 설계안에 반영됐다.
광명~서울 고속도로 위치도. /사진제공=국토교통부
광명~서울 고속도로 위치도. /사진제공=국토교통부
 
 
그린벨트가 1만3000명 주거지로 탈바꿈…기존 지반 안정성 평가는 신뢰도 낮아
 
 
문제는 이 기간을 거치면서 이전에 황무지나 다름 없었던 항동지구가 5200여 가구, 1만30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대규모 주거지로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과거 노선을 검토했다가 무산된 지역보다 더 많은 주민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과거 조사 자료를 근거로 "안전하다"는 입장만 반복한다. 국토부는 항동지구 주택사업 시행자인 서울도시주택공사(SH공사)와 2014년 1월, 2016년 4월, 2017년 9월 3차례 안정성 검토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조사결과는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당시 항동지구엔 건물이 전혀 들어서 있지 않았고, 특정 지반에 대한 샘플조사에 그친 까닭이다. 특히 마지막 검토 보고서엔 "향후 건물이 들어설 경우를 대비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부대 의견이 달렸다. 전문가들도 이곳이 주거지역이 된 이후에 지하 터널공사를 하게 되면 지반과 건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언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항동지구 아파트는 2017년 분양해서 2019년부터 본격 입주를 시작했다. 5200여 가구가 모두 입주를 마무리한 시점은 2020년 상반기다. 주민들은 입주가 완료된 시점에서 보다 정확한 안전진단을 요청했고, 지역구 소속 이인영 의원실의 중재로 지난해 다시 온수터널 구간 지하 지반조사가 실시됐다.
온수터널 지반 안전평가 보고서 내용. /자료=항동주민연합
온수터널 지반 안전평가 보고서 내용. /자료=항동주민연합
 
 
최신 검증 보고서엔 곳곳에 터널공사 붕괴 위험 우려 …정부는 "안전하다" 입장만
 
 
온수터널 노선이 관통하는 지반 20곳을 다시 검증한 결과는 예상보다 문제가 많았다. 우선 암석이 잘게 부서져 터널 굴착 등 토목공사 과정에서 침식과 붕괴 우려가 있는 '단층파쇄대'가 발견됐다. 이 위에는 현재 중학교가 있고, 건설사가 시공 편의를 위해 만드려는 '수직구' 예정 부지도 포함돼 있다.

공사 구간 인근에 항동저수지와 역곡천이 있어 터널 공사 구간으로 지하수가 과다 유출될 수 있다는 검토 의견도 나왔다. 보고서에 "지속적인 지하수 수위 모니터링과 관리가 '반드시' 요구된다"는 권고 문구도 있다.

검증에 참여한 5명의 전문가 중 "안전하다"는 종합 의견은 1명도 없다. 이들 중 일부는 국토부와 시행사가 섭외한 인사임에도 설계 재검토와 추가적인 시공 안전성 확보 방안을 주문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이미 지난해 말 완성돼 국토부와 시행사도 모두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보다 면밀한 조사를 거친 객관적 자료임에도 남북 외교관계와 경제성을 이유로 사실상 부실공사를 묵인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이에 더해 거짓 해명자료로 주민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3일 본지 보도([단독]북한 연결도로 만든다고..'붕괴' 위험에도 공사 강행 논란) 이후 낸 해명자료에서 "광명~서울 고속도로는 안전성 검증을 완료했고, 지역 주민과 지속 소통하며 시행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내용을 보면 정부가 검토 의견서에서 강조해 논란이 된 '남북 경제교류협력' 논거는 슬그머니 빠졌다. 대신 "개통시 수도권 교통 혼잡을 개선하고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서울로 접근성을 크게 제고할 것"이라는 입장만 밝혔다.

국토부는 또 "그동안 항동지구 터널 관련 수 차례 주민설명회를 거쳤고,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주민과 지속 소통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최초 주민설명회(2013년 4월)엔 사실상 현재 입주민은 거의 없었고, 2018년 4~7월 진행한 노선검증 주민설명회, 공사 착수를 위한 주민설명회(2019년 5~6월) 등도 사실상 절차적 타당성을 주장하려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게 주민들의 지적이다. 대다수 주민들이 입주를 시작하기 전에 했기 때문이다.

하성우 항동주민연합 대표는 "현재 항동지구에 거주 중인 주민 대부분은 정부나 시행사가 주최한 설명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지반 안전평가 보고서 내용. /자료제공=항동주민연합
최근 공개된 지반 안전평가 보고서 내용. /자료제공=항동주민연합
 
 
안전성 강화 대책도 미흡…지구 내 공법도 다르고 예정에 없던 대형 수직구도 추가
 
 
정부가 제시한 터널 안전성 강화 대책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정부는 터널 굴착 과정에서 폭약 발파를 허용하되 설계상 발파진동 범위를 최소 기준치인 0.3kine(cm/sec) 이하로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공개된 보고서에선 기계굴착이나 무진동 발파 공법을 선택하거나 허용발파 기준을 0.2kine(cm/sec) 이하로 해야 한다는 검토 의견이 들어있다. 전문가들의 조언도 거의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발파진동 기준치를 충족한 현장에서도 이미 여러 안전사고 위험성이 현실화됐다. 2018년 5월부터 진행한 강동구 고덕동 서울~세종 고속도로 13공구 구간 공사 현장에서 약 100m 떨어진 주택가와 학교에선 공사 시작 후 건물 곳곳에 균열이 발생했다. 이 현장도 발파진동 기준치를 0.3kine(cm/sec)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현장과 다소 떨어진 건물도 이런 피해를 입는데 이번 항동지구 온수터널 공사 구간은 초등학교, 중학교, 상가, 일부 아파트 동을 관통한다. 주민들이 공사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이유다.

정부는 또 터널 심도를 37m에서 52m로 낮춘 것도 안전관리를 강화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취재 결과 이는 구간을 관통하는 한 아파트 단지의 '구분설정권' 통지 문제와 얽혀 그대로 진행하면 위법했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해야할 의무적인 조치를 안전관리 성과로 포장한 셈이다.

시행사가 같은 지구 내에서도 시공 방식을 구분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공공부지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및 임대아파트 부지 직하부는 폭약 발파를 하고, 인접한 민간 아파트 지하는 포크레인 등을 이용한 기계 굴착을 선택한 것이다.

안전사고 위험에 더해 지구 한가운데 지을 수직구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수직구는 터널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토사를 옮기고 화재 등 비상상황 발생 시 지상으로 대피하는 공간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터널 깊이인 지하 50m까지 착굴하고 위에는 지상 4~7층 높이의 방음하우스 형태의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문제는 수직구 조성 위치가 초중학교 학생들이 오가는 통학로라는 점이다. 공사 계획에 따르면 이곳에 토사를 실은 25톤 대형 덤프트럭이 15분마다 지속적으로 오간다. 송혜미 항동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은 "돈과 아이들의 안전을 바꾼 것"이라며 "제대로 된 설명회 없이 건설사를 앞세워 강압적으로 공사부터 하려 한다"고 토로했다.    
 
국토부, 대표성 부족한 특정 단체만 협의…주민 반발에도 정부, 시행사, 시공사 책임 떠넘기기
 
 
정부와 시행사는 터널 공사 안전관리를 위해 '주민협의체'와 협의 중이라고 했지만, 이경하 주민협의체 대표는 "협의체는 항동지구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 지역 대표성이 없다고 인정한 셈인데, 국토부와 시행사는 이 단체와의 접촉 횟수를 근거로 주민과 지속 협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내용의 국토부 해명자료가 공개되자 항동지구 지역 온라인 카페에는 "국토부가 거짓말로 공사를 강행하고 주민안전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무엇보다 정부의 대응이 아쉽게 느껴졌다.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전혀 다른 성과주의와 속도전 행태를 보여서다. 국토부, 시행사, 시공사 관계자 중 아무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지겠다"는 언급이 없었다. 첫삽을 뜨기도 전에 면피용 행보만 하는 게 느껴졌다.

이제라도 공사를 강행하려는 기조를 바꿔 주민들과 제대로 된 대화에 나서길 권유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린벨트 상황에서 기획된 터널공사 방식을 1만3000명 이상의 주민이 살고 있는 주택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